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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1-17 12:34
동아시아미래재단 2014 신년 하례회 손학규 상임고문 신년 메시지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813  

안녕하십니까?

지난 연말 송년회에 이어 오늘 신년회에도 많은 내빈과 회원 여러분께서 참석해 주신 데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청마의 해 갑오년 새해를 맞이하여 여러분 가정에 만복이 깃드시고 하시는 일 모두 뜻대로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새로운 시대의 전개를 기대했던 2013년이 실망과 좌절로 끝났지만 2014년은 그래도 희망을 갖고 출발하고자 합니다.

경제가 활력을 되찾고 서민들의 얼굴에 주름살이 펴지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반도에 긴장이 풀려서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며 평화적 통일을 바라보는 한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사회가 안정되고 정치가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러나 시작부터가 그렇지 않아 보여서 걱정입니다.

청마년의 새 해는 동해 바다를 힘차게 가르며 붉게 타올랐지만, 역대 최장인 철도파업의 여진이 채 가시지 않은 채 맞이한 새해는 분열과 대결의 뿌연 연기에 싸여있었습니다.

경제의 쏠림과 사회 양극화는 이제 더 이상 신문의 토픽이 아닙니다.

지난해 삼성과 현대차 양대 기업그룹의 영업이익은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시가총액비중이 전체의 36.5%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반면, 전체소득에서 차지하는 가계소득의 비중은 62%까지 하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새해 벽두부터 규제개혁을 통한 기업 활성화라는 지난 시기의 낡은 유성기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성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국제 경쟁은 더욱 치열해져서 우리 수출기업의 국제경쟁력에 비상이 걸린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시대의 흐름을 보는 지혜와 새로운 세상을 열어나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난 대선의 화두였던 복지사회와 경제민주화는 단지 선거를 이기기 위한 기만용 선전문구일 수 없습니다. 상생을 통한 성장이야말로 지속가능한 경제이기 때문입니다.

독일과 북유럽이 경제가 어려운 때에도 복지를 포기하지 않은 것은 함께 가야 잘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과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경제성장의 과실을 국민이 함께 누리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의 책임을 함께 나누는 사회통합이 경제 번영의 가장 효과적인 환경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대했었던 2013년 체제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이 사랑받는 구호가 된 것은 그것이 국민들이 함께 누리고 싶은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파라다임의 변화입니다.

경복궁 옆에 7성급 호텔을 지어 몇백개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규제를 푼다고 합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압니다. 그렇게 해서 재벌회사의 배나 불려주기보다는 그 자리에 자연과 어울리고 역사와 함께 호흡하는, 그리하여 시민들의 사랑받는 문화공간이 들어서길 바라고 있습니다. 독일 베를린의 중심 부란덴부르크 문 옆 수천평의 금싸라기 땅에 호텔이 아닌 유태인추모공원을 건립해 세계인의 사랑받는 명소를 만든 정부를 우리 국민도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대정신입니다.

새해 들어 통일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써 있듯이 통일이 도둑처럼 쳐들어 올 것이니 깨어있으라고 하는 예언도 심심찮게 들립니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은 이제 국민적 경구가 되었습니다. 좋은 일이고 희망을 부풀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져야 합니다. ‘무엇이 통일을 앞당길 것인가? 우리는 통일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독일통일이 주는 교훈을 새겨야 합니다. 독일은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동독의 급변사태에 대한 대비책부터 강구하지 않았습니다. 흡수통일은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군사적 대응은 더더구나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평화를 뿌리내렸습니다. 동서독의 공존을 제도화했습니다.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교류를 일상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소련과 폴란드 등 동구권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꾸준히 개선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정말로 통일은 도둑같이 쳐들어왔습니다. 동방정책으로 독일통일의 기틀을 만든 빌리 브란트 수상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보름전까지만 해도 자기 생전에 독일 통일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독일 통일을 가져온 것은 도둑이 아니라 동독의 자유시민이었습니다. 서독은 탱크로 베를린 장벽을 밀어부친 게 아닙니다. 봉쇄정책으로 동독 정부가 두 손 들고 나오게 한 것도 아닙니다. 동방정책으로 키운 자유시민들이 나서서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겁니다.

우리가 할 일은 끈기와 참을성을 갖고 북한의 주민을 자유시민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동포가 우리와 한 핏줄인 형제이고, 북한이 언젠가는 우리와 하나가 되어야 할 민족공동체라는 인식이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북한 정권은 정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바탕 위에서 그 실체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북한 정권이 좋고 옳아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상대해서 평화를 유지하고 우리 동포인 북한주민을 살리고 변화시켜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장 그런 일이 일어난들 그 결과는 무엇이겠습니까? 북한 사회의 내부적 변화 없는 정변은 다른 화만 불러올 가능성이 큽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인내심을 갖고 한반도에 평화를 자리잡게 할 때입니다. 북한 핵무기를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확고한 원칙, 대남 도발은 철저히 응징한다는 분명한 자세를 견지하면서 동시에 평화체제를 수립하고 교류와 협력을 강화할 때입니다. 이것이 깨어있으면서 할 일입니다. 통일이 도둑처럼 찾아와도 허둥대지 않고 맞이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는 겁니다.

한반도 주변정세가 어수선합니다. 동북아시아가 다시 열강의 각축장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한반도는 또 다시 희생양이 되고 대한민국의 위상은 실종될 염려도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남북관계를 하루빨리 개선해서 한반도 공동체가, 통일 전이라도, 남북 공동의 힘으로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는 데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합니다.

정치의 안정은 민생과 통일의 기본입니다. 대결과 증오가 한국 정치의 대명사가 되어있는 현실에서는 경제 활성화도 민생의 안정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준비도 모두 허망합니다.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가 되어야 합니다. 일방적인 독선과 위압적인 강요는 이제 더 이상 안정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법과 원칙이 밀어붙이기의 명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지를 않습니다. 우리는 권위주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주어야 편안한 사회입니다. 이래서 통합의 정치가 필요한 것입니다.

정부와 여당이 분열과 대결을 앞장서서 부추겨서는 안 됩니다. 노조의 파업에 설혹 불법적인 요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설득하고 포용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어야 합니다. 용산참사와 같은 일방적 법 집행은 피해 당사자의 비극 뿐 아니라 사회균열의 불행을 가져다줍니다. 행여 영국 대처 수상의 강경진압을 법치주의의 명분하에 무차별로 적용하다가는 사회적으로 분열과 불안만 부추길 뿐입니다.

분열과 대결의 정치가 가져다주는 사회적 비용의 지불에 야당이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아니 야당이야말로 지금 가장 높은 비용을 치르고 있습니다. 야당은 지금 존망을 가를 만큼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민주당에 대한 불신이 국민들 사이에 넓고 깊게 퍼져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안철수 현상이 왜 생겼는지, 그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국민들은 우리에게 두가지 상호 모순되는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싸울 것을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싸우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분배를 요구하면서도 분배가 성장을 해칠까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국민은 한 단계 높은 정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싸우면서도 싸우지 않는 정치, 복지와 성장을 함께 이룰 수 있는 정치, 지역주의에 기대지 않는 정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숙하고 품격있는 정치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행태에서 벗어날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합니다. 우리 정치의 파라다임을 바꿀 깊은 고민을 해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정치의 시작입니다.

안철수 신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과 좌절에서 비롯된 안철수 현상에 대해 안철수 의원과 그 동지들은 책임있게 응답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새로운 정치의 내용을 채워야 합니다. 무거운 사명감을 갖고 이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현실에 부딪치니 어려움을 실감할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찾기가 보통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을 올려놓을 수밖에 없는 유혹에 빠질 것입니다.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론의 유혹을 떨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당장은, 특히 선거를 앞두고 당장은 연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국민의 여망을 배신하는 일이고 결국은 국민으로부터 버림받는 길입니다.

어렵더라도 원칙을 지키고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여망을 받들면 혹 당장의 전투는 패배할지 모르지만 국민은 반드시 보상할 것입니다. 정치의 새로운 판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안철수 신당의 역사적 사명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진정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새로운 정치의 바탕은 통합이 되어야 합니다. 통합의 정치를 바탕으로 민생을 안정시키고 국민을 편안하게 보호해 주는 정부를 만들어야 합니다. 안보 불안 없이 평화체제를 구축하여 통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통합의 정치는 단순한 정치세력의 연대와 단일화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산술적 중간주의도 기회주의적 중도주의도 아닙니다.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대결과 증오의 구도를 타파하여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다원적인 민주사회에서 시민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여 사회적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키우고 국가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통합의 정치의 제도화가 요구됩니다. 대통령 한사람의 절대 권력에 의해 국정이 농단되고 그래서 국민이 고통 받는 정치를 제도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정치적 안정과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국가정책의 연속성과 예측가능한 정치를 담보하는 정치제도 개혁을 추진해야 합니다.

동아시아미래재단에서는 오늘 동아시아미래연구소 주관하에 통합의 정치와 합의제 민주주의를 위한 대토론회를 가졌습니다. 독일의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바탕으로 한 다당제를 비롯해 합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와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앞으로 재단과 연구소에서는 합의제 민주주의를 위한 권력구조 개혁을 위해서 다양한 연구 활동과 국민의 지혜를 모으는 일을 전개해 나갈 것입니다.

아울러 새롭게 전개되는 동아시아 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통일의 기반조성을 위해서도 적극적이고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갈 것입니다.

민생은 민주주의의 존재 이유이고 존립의 근거입니다. 불평등과 양극화를 극복하면서 경제성장과 복지국가를 구현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데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우리 동아시아미래연구소 소장 최영찬 교수를 비롯한 자문교수단의 노고를 바탕으로 제가 발의하고 국회에서 제정한 협동조합기본법을 더욱 발전시켜 대안경제로서의 협동조합을 활성화시키는데도 적극 노력할 것입니다.

2013년 체제를 정권교체를 통해서 실현하려는 우리의 의지는 좌절되었지만 함께 잘사는 나라, 통일한국의 복지공동체를 구현할 새로운 사회에 대한 우리의 꿈은 결코 스러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2018 년 체제가 되건 아니면 어느 해에 어떤 지도자와 세력에 의해 이루어지건 그것은 역사적인 필연입니다. 저녁이 있는 삶이 오늘 이루어질 현실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가까운 시대에 반드시 이루어야 할, 그리고 반드시 이루어 질 우리의 꿈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그 길을 향해 서두르지 않고, 낮지만 당당한 자세로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제가 정치에 들어서면서 서강대학교 제자들에게 마지막 강의에서 한 말, ‘내가 무엇이 되는지 보지 말고, 무엇을 하는지 보아달라고 한 말은 언제나 저의 가슴 속에 굳게 새겨져 있습니다.

 

2014. 1. 16

손 학 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