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작성일 : 14-02-27 17:46
손학규 상임고문, 한반도 통일과 동아시아의 미래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66  


동아시아미래재단
2014년 제2차 대토론회

 

한반도 통일과 동아시아의 미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안녕하십니까?

오늘 ‘한반도 통일과 동아시아의 미래’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특히 원탁 토론의 화두를 던져주실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님과 진행을 맡아주실 장달중 교수님, 토론에 참여해 주실 송민순 장관님, 천영우 수석님, 전성흥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토론회를 공동으로 주최해 주신 동아시아미래재단의 송태호 이사장님과 프레시안의 박인규 대표님, 그리고 준비에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김영철 대표이사, 동아시아미래연구소의 최영찬 소장, 박순성 교수를 비롯한 여러 교수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세계 질서가 크게 변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G2 체제의 등장과 함께 동북아의 국제 질서는 그 변화의 중심에 있습니다. 중화주의의 재현 속에 중국은 신형대국관계를 공식 선언하였고, 미국은 이에 대응하여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 재균형 정책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일본은 평화헌법의 재해석과 함께 군사대국화를 도모하고 있으며, 주변국과 영토 및 역사문제에서 분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 개발 및 군사적 도발, 그리고 내부적 불안은 이러한 동북아 신질서에서 핵심적 불안 요소입니다. 미중 갈등, 중일 충돌, 한일 갈등 속에 한반도 문제가 동북아 변화의 핵심 요소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이러한 새로운 국제질서의 전환 과정에서 미중 대결의 희생양이 되어 분쟁의 장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이 대결구도를 기회로 전환시켜 평화와 통일의 계기로 만들 것인가?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반도의 정세 변화는 신년 들어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선 통일논의의 급진전입니다.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에서 던진 ‘통일대박론’은 한국 사회를 통일논의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습니다. 한 주요 언론의 ‘통일이 미래다’하는 캠페인까지 가세하여 마치 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것 같은 사회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습니다. 어제는 대통령이 취임 1주년 담화를 통해서 대통령 직속의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키겠다고 선언해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도 새로운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가 새해 들어 남북대화를 적극 제의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하더니 급기야 고위급회담을 열어 일괄 타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래 실로 6년 만의 해빙기류입니다. 이러한 진전은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대통령이 앞장 선 통일대박론은 통일 논의에 대한 금기를 풀고 논의를 활성화시킨다는 데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통일 논의가 다분히 북한의 급변사태와 급작스런 붕괴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습니다.

장성택 처형으로 부각된 북한 사회 내부의 불안 요소는 능히 급변사태를 예견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핵무기 개발로 인한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 특히 중국과의 관계 악화는 이러한 상황을 뒷받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급변사태가 온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냉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비상 상황에 대처할 준비는 해야 합니다. 소위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통일준비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겠다고 요란을 떨 일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비상대비책이 필요하면 통일부와 같이 기왕에 그런 목적으로 설립된 정부 부처에서 하면 됩니다. ‘체계적이고 건설적인 통일의 방향을 모색’하는 일이나, ‘민간 전문가들과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이 참여’해서 ‘한반도 통일의 청사진’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야 말로 통일부 본연의 업무이고 역할인 것입니다.

기왕의 정부 부처에서 할 일을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신설해서 실효성의 증대도 없이 상대방을 자극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염려됩니다. 통일이 정치상품화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급변사태가 오건 오지 않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고 간단합니다. 대화의 문을 더욱 활짝 열고, 교류의 폭을 대폭 늘리고, 협력의 수준을 높이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서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구축하면 그것이 통일을 위한 최선의 준비가 될 것입니다.

한반도 통일은 세 당사자가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을 때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북한 당국과 주변 관계국과 대한민국 국민이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북한 정권이 안심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게 하고, 한반도 통일이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고 당사국들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통일 논의가 국민간의 분열과 갈등을 조성해서는 논의 자체가 진전이 안 됩니다.

그래서 통일은 과정이고, 통일 프로세스는 평화 프로세스인 것입니다. 신뢰 프로세스도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포용정책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 오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일입니다. 독일 통일의 기본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접촉을 통한 변화’가 우리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여기서 저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포용정책의 핵심으로 ‘북미관계 정상화’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이야말로 동북아 평화와 북핵문제의 해결, 그리고 한반도 통일의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북한은 전후 미국이 국교관계를 가진 일이 없는 유일한 국가입니다. 통일 전 독일의 경우, 서독과 소련은 1955년, 미국과 동독은 1975년에 국교를 맺었습니다. 냉전의 한가운데 시기였습니다. 대한민국은 1990년과 1992년에 각각 소련 및 중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뤘습니다. 무엇보다도, 1991년에 남북한이 동시에 UN에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아직 북한과 국교정상화는커녕 양자 간 아무런 외교 채널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아무리 도발적이고 위험한 정권이라도 대화의 채널은 열어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위험에 대비한 소통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대화나 외교관계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충분한 논리적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공식적인 채널이 필요한 것입니다. 핵무기를 포기해야 대화든 협상이든 할 수 있다는 강경 입장이 지난 20년 동안 가져온 결과는 무엇이었는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래 6년간 견지해 온 압박과 봉쇄정책의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통일대박론의 핵심인 경제적 잣대로만 따져도 봉쇄정책의 결과는 북한에 대한 남한의 경제적 기회를 크게 놓친 동시에, 북한 경제의 대 중국 의존이 더욱 심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압박과 봉쇄정책에도 북한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대화체제(Dialogue Regime)의 정상화가 한반도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며 핵심입니다. 물론 6자회담이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 때문에 가동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북미관계입니다. 북한이 느끼는 위협도 미국이 그 대상이고, 북한이 상대하고자 하는 것도 미국입니다. 미국이 나서야 합니다. 북미간에 정상적인 채널을 가동하고,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됩니다. 미국은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는 북한과의 국교정상화에 나설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적극 요청하고 앞장서야 합니다. 통미봉남의 자격지심은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적극 나서서 북미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면 우리가 주도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적극적 역할에 의한 북미관계 정상화는 남북관계 개선을 촉진할 것이며, 아울러 자연스럽게 중국을 포함한 4자회담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4자회담은 핵문제 해결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 해결의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논의의 장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를 위해 오바마 정부에 클린턴 전 대통령의 특사 파견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케네스 배의 석방을 구실 삼아도 되고 그냥 가도 됩니다. 핵심은 미국과 대한민국이 높은 수준의 진정성을 보이는 것입니다. 미국이 중국과 관계 정상화를 할 때 키신저를 앞세운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제스처야말로 북한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압박수단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러한 노력과 함께 5.24조치를 해제하면서 과감하게 북한의 자세변화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화의 장을 다양하게 만들고, 인도적 지원과 민간 교류의 폭을 과감하게 늘려야 합니다. 동시에 금강산 관광과 개성 관광을 재개하고, 기업의 북한 진출을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이런 노력의 궁극적인 목적은 다름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이익을 취하면서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끌어내자는 것입니다.

지금 곧바로 북미 국교정상화를 추진한다고 해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미국이 중국과 국교정상화를 하는 데도 핑퐁외교 이후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습니다. 핵 문제 해결과 북미 관계 정상화는 동시에 추진되어야 합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의 합의사항이기도 합니다. 특사 파견에서 연락사무소 설치, 대표부 설치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도 동시에 진행하면 됩니다.

이러한 노력이 가시적인 성과로 연결되면 자연스레 경제적 교류와 협력도 활성화될 것입니다. 세상 이치가 다 그렇듯이, 통일도 그냥 단번에 대박이 되지 않는 법입니다.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법적 통일’(de jure unification)이 아니더라도 ‘실질적인 통일’(de facto unification), 즉 과정으로서의 통일 속에서 경제적 대박이 주어질 것입니다.

아울러 평화 프로세스를 통한 한반도 통일과정은 새로이 전개되고 있는 동아시아 신질서를 대결구조와 신 냉전 질서가 아닌 동북아 평화와 안정으로 연결되고, 통일 한국은 동북아 협력체제 구축의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