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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2-04 16:48
손학규 상임고문 러시아 극동문제연구소 초청 강연 1 (2016. 1. 27)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216  

2016. 1. 27
러시아 극동연구소

한반도 통일과 러시아의 역할
                                                                   
                                                                         손 학 규



오늘 극동 연구소의 초청을 받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러시아의 역할에 대해 저의 의견을 피력하고 석학 여러분들과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를 초청하고 귀한 토론회를 준비해 주신 Titarenko 박사님과 소장 권한대행 Luzianin 교수님, 그리고 관계 직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작년은 한·러 수교 25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지난 4반세기 동안 한·러 관계는 괄목할 발전을 이루었고 이 시기는 과거 냉전기의 대결과 반목을 뒤로 하고 호혜적 동반자 관계를 정착시킨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러 수교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그 이후로도 꾸준히 한·러 관계 발전에 기여해 오신 티타렌코 박사님과 극동연구소의 노고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어제 티타렌코 박사님을 뵙고 고견을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이 기회를 빌려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티타렌코 박사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러시아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 그리고 경제적 번영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나라입니다. 흔히 말하는 한반도 주변 4강의 일원이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회원국입니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통일 문제에서 러시아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러시아의 극동 시베리아 개발은 한국에 경제협력의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 발전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으며 한반도 통일에도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과 러시아의 접촉은 19세기에 본격화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쇠락하여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의 먹잇감이 될 상황에 처해 있었고 러시아는 극동 시베리아 개발과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높이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는 러시아에서 시베리아 철도 건설을 추진한 때와도 대체로 일치합니다.

그 시기에 조선은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었는데, 당시 러시아는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토 야욕을 갖기보다 한반도가 적대적 세력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데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조선에는 러시아와 협력을 통하여 여타 제국주의 열강으로 부터의 침탈을 피하고자하는 움직임도 있었고 일본 제국주의의 위협을 느낀 조선의 왕이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하여 장기간 거주하는 일이 생긴 것도 이러한 환경 속에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과정에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미국과 소련이 38도선을 경계로 관할 지역을 설정하고 한반도에 진주한 이래 남북은 동서 냉전의 최전선이 되었습니다. ·소 냉전이 격화되어 감에 따라 한국과 소련은 적대 관계로 들어갔으며, 1950년 김일성의 남침을 스탈린이 지원함에 따라 적대 관계는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1980년대 고르바초프 치하 소련에서 시작된 페레스트로이카와 이에 따라 냉전체제가 해체되는 흐름에 발맞추어 한국은 북방외교라는 이름하에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와의 관계 개선에 나섰습니다. 한국의 적극적인 외교와 소련의 전향적 사고에 힘입어 한국과 러시아는 1990년 관계정상화에 이르렀고 이후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 관계의 100여년 역사를 되돌아보면 서로에게 긍정적인 균형자 역할이 있었던 시기가 있었고, 냉전구도 속에서 서로 소모적인 대결을 지속한 시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냉전 구도를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로 나아가는데 러시아의 중요한 기여와 역할이 있었음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앞으로의 한·러 관계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서 의미 있는 시사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20세기 말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과 소련의 해체로 시작된 새로운 세계질서는 중국의 부상으로 동아시아에서 또 하나의 신질서 구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부상은 세계 경제의 축을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동시켰고, 중국과 미국이 신형 대국 관계를 형성한 가운데 아시아 태평양 시대가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서 미국은 아시아로의 회귀 (Pivot to Asia) 정책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힘의 재균형(Rebalancing)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미·일 동맹의 강화 및 한··일 동맹체제의 복원으로 팽창하는 중국의 세력을 견제하고 아시아에서 미국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은 보통국가로의 전환을 꾀하면서 군비증강과 미일동맹의 강화를 통해서 지역 내 군사대국으로의 도약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집단자위권의 행사를 통해 자위대의 해외 파병 가능성을 열고 유사시 한반도 진격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의 취임 이후 신동방 정책을 표방하고 극동지역에 적극적인 진출을 꾀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극동 시베리아 개발을 통하여 동아시아에 경제적 기회를 확대하고, 정치적으로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적극적인 행위자로서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탈 냉전기 미국 주도의 세계 신질서 형성과정에서 유럽에서 전략적 열세를 체험한 러시아는 이를 상쇄하기 위해 아시아에서 전략적 균형을 모색하고 이를 위한 전략 핵심파트너로서 중국을 선택하였으나 다른 한편 동아시아 외교에서 중국에 대한 일방적인 의존관계를 탈피하고 이 지역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신동방정책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극동 시베리아 개발을 위한 한국과의 협조 내지 남··러 삼각협력체제의 구축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한반도 문제는 이와 같이 급변하고 새롭게 조성되는 동아시아 신질서 속에 전개되고 있습니다. 한반도 문제의 핵심 현안은 북한의 비핵화입니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대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꾸준히 핵무기와 전략 미사일을 개발하고 급기야 금년 16일에는 그들이 수소탄이라고 주장하는 4차 핵실험을 실시하였습니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실험을 일제히 비난하고 유엔은 안보리를 통하여 강력한 제재 조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국제사회에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하고 6자회담 당사국들도 북한에 대한 제재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는 제재에는 동의하지만 제재가 새로운 긴장을 야기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는 다소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비핵화는 국제사회의 일치된 확고한 의지입니다. 비핵화는 한반도와 주변 지역의 평화에 절대적인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과연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대북제재가 북한 비핵화에 효과적인 대응책이 될 수 있을까? 한국 정부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이에 동의합니다. 이란의 비핵화가 당사국들의 강력하고 지속적인 제재 때문에 가능했고 북한에도 이 사례를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일견 타당한 주장입니다. 그러나 과연 북한에 대한 제재가 북한의 핵개발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선뜻 답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간의 북한에 대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꾸준히 핵무기를 개발하고 그 수위를 높여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접근방법은 무엇인가? 저는 여기서 잠간 지난 20여년간 남북관계의 진행과정을 돌아보면서 북핵문제의 본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남북관계는 김대중 대통령 시기에 절정에 달했고 노무현 정무에서도 초기에 약간의 소강기가 있었지만 남북 교류 협력은 활성화되었고 그 가운데 금강산 관광돠 개성공단 사업도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류 협력의 분위기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퇴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군에 의해 사살되면서 경색 국면에 들어선 남북관계는 천안함 사태로 취해진 5.24 조치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교류와 협력이 중단된 사태에 이르러 지금까지 왔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있었으나 지금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고 오히려 20158월 비무장지대에서의 지뢰 도발사건으로 촉발된 군사적 대치상황과 4차 핵실험 등으로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실정입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신뢰 프로세스동북아 평화협력 구상등을 발표하면서 대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보이기도 했지만 실제 정책 시행과정에서는 꾸준히 대북 압박을 강화해 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듬해인 2014년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하면서 통일 분위기를 조성했으나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은 다분히 북한의 급변사태즉 북한 붕괴론과 이에 따른 흡수통일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압박 정책은 북한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박근혜 정부 출범이래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게 되었으며 이런 환경 속에서 북한의 제4차 핵실험이 단행된 것입니다.

북한의 핵무장은 결코 용인할 수가 없습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함께 공조해서 적극 대응해야 합니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를 통해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결코 북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핵무기를 포기하면 국제사회가 북한의 안전과 번영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합니다.

문제는 규제의 현실적인 효율성의 문제입니다.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중국과 러시아가 적극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과연 이들 두 나라가 북한의 안보와 북한 주민의 경제생활에 결정적 타격을 줄 만큼의 강력한 통제에 적극 참여하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제재가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제안한 5자회담도 중국과 러시아가 연이어 거부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비핵화 정책에서 제재를 통한 압박정책과 더불어 대화와 타협을 통한 평화정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의 병진정책이 필요한 것입니다. 제재를 통한 압박이 현실적으로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지 못한 역사적 현실을 감안할 때 비핵화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평화 프로세스를 통한 북한 비핵화의 목표는 북한의 개혁 개방과 평화적 통일입니다. 남북한의 평화적 공존과 공동번영은 평화 프로세스의 전제가 되는 한반도 정책의 전략적 목표입니다.

평화 프로세스는 4단계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첫째, 남북간 교류협력의 강화, 둘째, 평화체제의 확립, 셋째, 국가연합을 통한 실질적 통일, 넷째 법적 제도적 통일이 그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을 재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북한이 계속 핵실험을 실시하고 군사적 긴장을 도발하는데 웬 교류 협력이냐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겠지만 전쟁 중일수록 한편으로 평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선 인도적 차원의 지원과 교류를 재개해서 북한에 대해 타협과 대화의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금강산 관광 등 경제 교류와 협력을 재개해서 적대적 긴장을 해소할 적극적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5.24 조치의 해제는 당연한 수순입니다.

경제 교류와 헙력은 북한에게만 경제적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견입니다. 북한의 경제적 기회를 활용하는 것은 남한의 경제적 활로를 여는데도 긴요합니다.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은 북한 주민의 시장경제와 남한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기여할 것이고 점차적인 개방은 북한 사회의 내부 구조를 개혁하는데도 기여할 것입니다. 이는 또한 남북간의 격차를 줄여서 장기적으로 통일비용을 줄이는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미 북한 경제의 상당 부분은 장마당 경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은 이러한 개방과 인식의 변화를 촉진할 것입니다.

교류 협력을 통한 북한의 개혁 개방이 효율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개혁 개방으로 북한의 체제와 정권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북한 정권의 안전을 보장해주어야 북한의 엘리트들이 개혁 개방에 안심하고 나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화체제의 확립이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평화체제의 전제는 북한의 핵 포기입니다. 북한의 핵무장은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주변 국가들의 군비확장과 핵무장화를 부추길 따름입니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로 아무런 이득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고 경제 사회 발전이 가로막히는 결과만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북한 스스로 핵무기를 포기하고 비핵화의 길로 들어서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가 동시에 인식해야 할 것은 이러한 논리가 북한을 설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계속 미국으로부터 체제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체제와 정권을 위해서 기댈 것은 핵무기 밖에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북한은 체제와 정권의 안전에 대한 보장과 확신이 있어야 핵무장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전 단계의 교류 협력에 적극 대응할 것입니다. 평화체제는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계속 하고 군사적 긴장을 도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지만, 북핵 폐기와 개혁 개방을 위해서 국제사회가 해야 할 일은 한반도 평화체제 확립을 추진하는 것입니다.

평화체제의 확립은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의 자세입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북미관계 정상화는 이 프로세스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북한은 2차 대전 후 미국과 한 번도 국교관계를 맺은 일이 없는 유일한 국가입니다.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는데도 미국은 북한과 국교수립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합리한 상황을 끝내는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