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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2-04 16:52
손학규 상임고문 러시아 극동문제연구소 초청 강연 2 (2016. 1. 27)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55  



미국이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서기 위해서는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합니다. 한국 정부가 나서지 않는데 미국이 급할 이유가 없고 한국 정부가 북한의 급변사태를 기대하고 있는데 미국이 여기에 찬물을 끼얹을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북한의 급변사태는 일어날 수도 안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급변사태가 과연 바람직하고 남한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진지한 검토가 필요할 것입니다. 북한 정권의 급작스런 붕괴는 흔히 말하는 통일대박론으로 연결되기 보다는 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이 큽니다. 우선 북한의 급변사태를 감당하기에 남한 경제는 역부족입니다. 1990년 독일 통일 당시 동독의 1인당 GDP는 서독의 38%였습니다. 서독이 튼튼한 경제를 가졌음에도 통일독일은 동독 주민들을 위한 높은 복지비로 인해 심각한 경제적,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013년 기준, 북한의 1인당 GDP는 남한의 5%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경제가 북한 주민의 생활을 책임지기에는 아직 그 역량이 태부족입니다. 경제적인 차이뿐만이 아니라 생활양식과 문화적 차이도 급변사태 이후 한국사회를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할 것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에는 아직 그만큼의 준비와 숙려기간이 필요합니다.

북한의 급변사태는 주변 강국들의 안보적 이해관계 때문에 쉽게 일어날 수도 없겠지만 만약에 그러한 사태가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유발해서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크게 위험요소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면 주변 강대국들이 평화유지 활동을 빌미로 북한에 진주할 빌미를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유사시 북한지역을 4대강국이 분할 점령하는 비상계획이 세워져 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일본 방위상은 한국의 승인 없이 북한영토에 일본군을 파견할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만약에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해 적절한 통제 아래 관리되지 않을 경우 한반도가 군사적 분쟁지역으로 될 가능성을 염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여러 사정을 감안할 때 북한의 급변사태에 의한 통일은 실현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실행 가능하고 바람직한 한반도 통일 시나리오는 결국 평화프로세스에 의한 통일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북한을 제외하고 일방적인 압박정책을 함축하고 있는 5자회담 제의는 현실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잘못된 정책입니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을 설득하여 북한을 외교적 파트너로 인정하고 적극적인 대화에 나서도록 평화 이니시어티브를 행사해야 할 것입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러시아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북핵 문제 해결에도 러시아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그동안 북핵문제나 한반도 문제에서 러시아의 존재와 역할은 상대적으로 미약했습니다. 한국도 러시아의 역할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지정학적으로나 지경학적으로나 한반도에 커다란 이해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지정학적으로는 한반도가 러시아의 극동 최전방 육지에 면해 있는 나라입니다. 군사적으로 러시아의 광활한 지역과 국경선의 동쪽 끝을 커버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푸틴의 신동방정책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극동 시베리아 지역을 개발하고 이를 거점으로 러시아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일원으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한 포석입니다.

푸틴 이전에 러시아의 국제정치적 이해가 서부전선에 있었다면 푸틴 이후 러시아는 극동 시베리아를 통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그 존재와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동북아시아에서의 이해관계는 한편으로는 극동 시베리아 개발을 통한 경제적 이익의 추구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접국가의 안전과 평화에 있습니다.

러시아의 지역적 관심과 이해관계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그대로 투영되고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전략적 목표는 비핵화와 북한체제의 안정과 평화, 그리고 북한과의 경제협혁을 통한 극동지역의 경제적 진출입니다.

러시아는 북한의 핵무장을 분명히 반대합니다. 북핵은 지역의 안보균형을 파괴하고 역내 군비경쟁, 특히 핵무장 경쟁을 유발할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과 남한은 물론 인도네시아까지 핵무장에 나설 염려가 있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UN의 제재에 동의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제재가 지역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북한 주민의 삶을 위협하는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제재가 북한을 압박하여 체제붕괴를 유도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지역 내 인접국가의 안정을 해쳐서 러시아의 안보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는 러시아의 전략적 목표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이러한 러시아의 전략적 목표를 이해하는데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의 북한 비핵화 정책은 이러한 러시아의 전략적 목표와 충돌함이 없이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UN을 통한 강력한 제재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의지를 좌절시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되 러시아와 중국 등 북한체제의 안정과 지역의 평화를 전략적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나라들의 적극적 참여를 어떻게 이끌어 낼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대목입니다.

러시아는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통한 극동지역의 진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은 철도 개보수 등 북한 현대화 사업인 승리(Pobeda) 프로젝트에 러시아의 기업들을 파트너로 참여시키고 있습니다. 나진 하산 프로젝트에는 러시아와 북한이 만든 합작기업 라선 콘트란스의 러시아 지분 절반을 한국철도공사, 포스코, 현대상선으로 구성된 한국측 컨소시움이 인수하는 방식으로 추진함으로서 대북한 경제협력 프로그램에 한국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경제성 문제에 따른 한국 측의 소극적인 자세와 러시아 경제의 침체로 소강상태에 있지만 이러한 남··러 삼각 협력사업은 경제적 이익 외에도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동북아의 안정화를 도모하는데도 많은 기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협력 프로젝트는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시어티브와 조화를 이루며 한국과 러시아가 극동지역의 협력체제를 확립하는데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인 만큼 한국 정부에서도 적극 지원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한반도 통일과 관련한 러시아의 역할은 더욱 긍정적입니다. 러시아는 주변국가 중 가장 적극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통일 한국은 명백히 러시아의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극동 지역에서 안정과 평화를 확보함으로써 러시아의 안보 부담을 덜 수 있고 통일 한국의 경제적 다이나미즘이 극동 시베리아로 연결되어 러시아의 신동방정책 추진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통일 한국은 러시아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일원으로 참여하는데 중요한 지원자가 될 것입니다.

러시아는 한반도 통일을 앞당기는 데도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는 이미 독일의 통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정책은 동서 냉전체제를 해체하는데 핵심적인 동력이 되었고 유럽을 한 지붕 아래 통합하는 효과를 가져왔으며 이것이 독일 통일의 환경을 조성한 것입니다.

고르바초프의 러시아가 당시 유럽 정치의 중심에 서서 유럽의 새로운 통합에 기여했다면, 푸틴의 러시아는 신동방정책을 통해서 동아시아의 통합을 추구하는 큰 그림을 그릴 때가 되었습니다. 프랑스가 유럽에서 독일 통일의 균형자적 역할을 한 것처럼 러시아가 미국/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균형자 역할을 할 때가 된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과 러시아는 여러모로 긴밀한 협력을 할 때가 되었습니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그렇고 한국과 러시아의 공동 번영을 위해서 그렇습니다. ··러 협조체제의 확립은 그 첫 번째 과제가 될 것입니다. 경제협력 프로그램의 적극적 추진과 이를 위한 정부 차원의 능동적 지원이 요구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참여가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북한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과제입니다. 러시아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평화체제 구축에 있습니다. 북핵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단기적 과제로서 UN 차원의 제재를 조화롭게 이끌어 내는데도 러시아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북한의 급변사태 시나리오가 아니라 평화 프로세스에 의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한반도 문제 해결에 러시아가 능동적인 역할을 찾아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러시아가 이러한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러시아와의 협력체제를 적극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한·러 정상회담의 정례화를 추진할 필요도 있습니다. 2013년 푸틴 대통령의 방한 이후 한국 대통령의 답방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여러 차례의 다자회담에서 한·러 정상 회담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중요한 의미 없이 치러진 점은 진지하게 반성해 볼 사항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일방적으로 5자회담을 제안하고 중국과 러시아에서 잇달아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도록 한 것은 한국 외교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와 같이 균형자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나라와의 외교에 더욱 세밀한 신경을 써야 할 대목입니다.

결론적으로, 러시아는 새로운 동북아 신질서의 형성에 적극 참여해야 하고 한국은 이를 위한 환경의 조성에 적극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확립하고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 공동 번영을 이룩하는데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러 관계를 긴밀하게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이 공동의 과제를 갖고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구할 것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