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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5-04 16:17
"세상에 이만한 사람 어딨어요!"- 2012.1.28 무등산풍경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60  

세상에 이만한 사람 어딨어요!”


2012년 1월 28일의 광주의 무등산에서




이웅환(언론인/자유광장편집위원)


김명숙 할머니(66)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처음에는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 눈자위를 훔쳤지만 이내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그 누구도 김 할머니의 굵은 눈물을 눈치 채지는 못했다.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엊저녁 밤새 버스 타고 내려와 지금 이 늦은 시각까지 저와 함께 해주셔서 무어라 감사의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그 뜻을 제대로 새기겠습니다. 다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손학규 상임고문의 목소리는 이미 갈라지고 있었다. 지칠 만도 했다. 이날 새벽부터 무등산을 찾은 지지자들과 함께 6시간 이상의 등산을 한데 이어 현지 식당에서의 식사모임 자리까지 함께한 그였다. 하지만 그는 김 할머니가 탄 전세버스가 막 출발하려던 순간 차에 뛰어올랐다. 이미 바깥은 어둑한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김 할머니는 순간 턱하고 숨이 막혔다. 뜨거운 그 무언가가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여러분, 올라가는 길 부디 조심하시고 내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또 뵙겠습니다.”

버스 속 손잡이를 잡고 인사를 마친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갔다. 두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서로가 눈길을 부딪쳤다. 버스 뒤쪽에선 손학규, 손학규!”하는 연호가 계속 울려 퍼졌지만 김 할머니는 연신 손수건만 얼굴에 갖다 댔다.


2012128, 광주의 날씨는 영하였지만 무척이나 맑았다. 파란 하늘을 내두른 무등산 입구는 손학규 팬클럽 회원들로 북새통이었다. 동아시아미래재단 회원을 비롯하여 자유광장, 학규마을, 민심산악회 등 전국에서 모인 1,000여명의 지지자들이 등산복 차림으로 함께했다.

증심사 입구 운빈정사 앞 광장에서 출발한 등산모임은 중머리재를 거쳐 장불재로 향했다. 이어 하얀 눈길의 등산로를 따라 무등의 정상인 입석대(立石臺)를 밟았다. 바로 옆에는 서석대(瑞石臺)의 웅장한 돌기둥이 펼쳐졌고 뒤편으로 천왕봉과 지왕봉 그리고 인왕봉의 3봉이 머리를 감쌌다.

수 만년 전 화산 폭발로 생긴 수정 병풍 모양의 돌바위인 서석대 정상은 찬바람이었다. 깊게 쌓인 눈은 눈꽃왕관이었다.

손 상임고문은 정상에 서서 두 눈을 감았다.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윽고 눈을 뜬 그는 조용히 산 아래의 광주 시내를 응시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이곳은 무등산(無等山)입니다. 등급이 없고,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는 산입니다. 그러기에 무등은 곧 통합의 아이콘입니다. 지금 이 나라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사회통합과 남북통합, 그리고 이를 위한 정치통합입니다. 바로 이 ‘3통의 시대를 만들어 가야합니다.”

그는 가슴을 활짝 폈다. 두 손을 꽉 쥐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 입술을 꼭 깨물었다. 이날 무등산 선언은 곧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출사표였다.

등산길에 함께 한 팬클럽 회원은 물론이고 이날 무등을 찾은 수많은 등산객들도 박수와 환호로 그를 맞았다. 만세삼창의 소리가 멀리 북녘까지 달려갔다.

태곳적의 화산 돌더미가 화답했다. 수 천년동안 쌓이고 쌓였던 한반도의 눈바람이 응답했다. “손학규! 손학규!”라는 외침이었다.

정상에서 내려와 장불재 쉼터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한 후 잠시 휴식하던 손 고문은 마침 이 시각 무등산을 찾은 김두관 경남지사와 조우했다. 서로 반갑게 가벼운 인사를 나눈 후 하산 길을 서둘렀다.

오르는 길보다는 내려오는 길이 더욱 힘들었다. 눈길인 만큼 시간이 더 걸렸다. 오후 4시를 훌쩍 넘겨 다시 출발지에 도착한 일행은 근처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겸한 모임을 가졌다. 문제는 식당으로 들어오는 길목이었다. 이미 그곳 주민들은 물론 이날 무등을 찾은 등산객들까지 수 천 명이 진입로를 꽉 메우고 있었다.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광주시민들은 이미 그를 원하고 있었다.

그는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1층과 2층을 오르내리면서 참석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각 방에서는 손학규!”의 외침이 끊이질 않았다.

오늘 차가운 날씨에 참으로 수고 많았습니다. 무등의 정상에서 우리는 이 시대의

철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우리가 과연 무엇을 원하고 있고, 무엇을 해내야만 하는지를 되새겼습니다. 이 나라의 성군이었던 세종대왕의 뿌리 깊은 나무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대부들은 특권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몸부림을 쳤습니다. 폭력을 불사하면서까지 변화를 가로막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그러한 특권층의 저지를 뚫고 백성이 제대로 대접받는, 백성이 조선사회의 한 굳건한 일원임을 보여주는 국민통합을 이뤄냈습니다.”

그는 가슴을 활짝 열어 펼쳤다. 그가 진정 원하고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펼쳐 내보였다.


손학규, 그는 그동안 먼 길을 돌아왔다. 가깝게 질러갈 수 있는 길도 마다했다. 비록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제 길을 가야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또한 그 길이 맞다고 생각되면 스스럼없이 그 길을 택했다.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길도 가야한다는 판단이 서면 과감하게 달려갔다. 그러다보니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 때도 적지 않았다. 안타까워할 때도 있었다. “바보 같다는 평가도 없지 않았다.

세종대왕도 마찬가지였다. 한글창제에 이어 실용과 기술을 바탕으로 한 각종 기기와 제도를 내놓았을 때 기존 사대부 층의 반대와 반발은 실로 거셌다. 목숨을 건 싸움이었다. 그것은 곧 전쟁이었고, 시대와의 싸움이었다. 한쪽은 개혁의 발목을 잡는 과거에서 탈피하려는 싸움이었고, 다른 한쪽은 그동안 누려왔던 기득권과 안위를 내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안주하려는 현재냐, 더 나은 미래냐를 겨루는 큰 싸움이었다. 세종대왕은 그 치열한 싸움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후세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염려하지 않는다. 지금의 백성들이 나의 뜻을 알아주지 않아도 또한 서러워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할 일은 지금 나에게 맡겨진 백성들을 염려하는 것일 뿐이다...”

손학규 상임고문 앞에 놓인 상황이 바로 그러하다. 세상이 바뀌어한다.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대치하고 어지러운 질서는 바로잡혀야 한다. 새 시대를 위해, 새로운 세상을 위해 온몸을 바쳐야 한다. 그래야 역사가 발전하고 더 나은 세상이 다가오게 된다.

정치를 하면서 무슨 복안이나 전략, 이런 것들을 앞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매사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뿐이지요.”

손학규 고문은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언론에서 차기 대선주자로 특정인을 내세울 때도 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부당한 평가였고 부적절한 저평가 였지만 그래도 그는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통합민주당을 출범시킨 이후 민주당 대표 자리를 내놓고는 오히려 홀가분한 모습으로 손학규 경제론집필에 들어간 그였다.

물론 작금의 정치기상에 대해 관심이 없을 수는 없다. 각 언론사가 경쟁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여론조사에서도 그는 3’에 빠져있다. 마음이 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갖는 생각은 단 하나이다. ‘준비하고 기다리면 반드시 필요할 때가 온다는 소신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느 곳에 있더라도 주인의식을 가지면 서 있는 곳마다 바로 참되다는 확고한 믿음이다.


김 할머니는 고개를 뒤로 돌려 맨 뒷좌석까지 인사를 마치고 나오는 손학규 상임고문을 올려보았다. 추운 날씨 속에 하루 종일 시달렸으니 지칠 만도 한데 여전히 웃음을 띠고 있었다. 부드러웠다. 아니 참으로 포근한 얼굴이었다. 대단한 체력과 정신력이었다.

전세버스는 시동소리와 함께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린 손 고문은 어둠 속에서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그러고는 옆쪽의 버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상에 이만한 사람이 어디 있어! 이 나라를 이끌 대통령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 하는 것 아냐!”

김 할머니는 울먹이면서 외쳤다.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 울린 버스의 클랙슨 소리에 실려 김 할머니의 흐느낌은 더 멀리 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