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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4-23 14:18
안타까운 정치불신 현실과 준비된 국정지도자는 없는것인가?
 글쓴이 : 무진장
조회 : 205  

안타까운 정치불신 현실과

준비된 국정지도자는 없는것인가? 

  2011년 12월 11일 잠실체육관에서 목도한 일이다. 야당으로서 민주당 내에 존재한 면모를 일거에 눈앞에서 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정치가 냉소와 혐오감을 지나쳐 코미디의 소재가 된 세상에 산다. 인터넷에 좀 삐닥한 글이 올라와 댓글이라도 달면 ‘너 정치인이지? 국회의원이지?’하는 댓글이 붙는다. 오늘의 정치 불신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며, 민주진영의 바른 지도자를 이제라도 제대로 모셔야 한다는 생각이다.

대한민국에서 정치를 칭찬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모두 욕하고 불신한다. 정치인이란 허구한 날 치고 받고 싸우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말을 쉽게 바꾸면서 권력만 향하는 위선적이고 탐욕스러워 사리 사욕만을 우선시 하는 인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치 불신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닌 민주화 이후에 국가를 대신해서 정치적 헤게모니를 주력으로 급성장한 일부 언론들이 정치는 불필요한 소모전이고 갈등만 부추기며, 정치인들은 퇴행적인 권력싸움에 눈먼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집요하게 대중에게 전파했다. 그 과정에서 항상 강조된 것이 국익, 화합, 통합이고, 비난 받은 것은 국론분열, 파벌싸움, 정쟁, 권력욕 등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러한 비판에는 갈등, 대립, 싸움을 본질로 하는 정당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대단히 이념적인 함의가 들어 있다. 언론은 그동안 정당 간 혹은 정파 간 불가피한 싸움에서 드러나는 차이에 대해 선별적으로 따지고 분석하기 보다는 두루뭉실 “정치인들은 허구한 날 싸우기만 한다.”라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가? 들여다보면, 정치 불신은 원래 권위주의 정치시대의 유산이다. 정치를 금했던 독재세력은 물론이고 민주주의를 원했던 국민들도 정치를 독재와 동일시하여 정치를 비판적으로 왔기 때문이다. 독재체제의 문화적 세례를 받아온 사람들은 반정치의 교육을 통해 온 국민의 화합과 단결을 최선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졌다.

그것이 유교 전통의 일원주의적 도덕주의와 결합하여 혼선, 분열, 갈등, 이견을 뭔가 부정적이고 위엄하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바로 보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더구나 정치 비난 하기를 통해 시장의 원리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는 경제적 언론재벌의 횡포가 더해져 경제가 정치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위험천만한 메세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독립된 시장경제는 혹 재벌 중심으로 경도되고, 경제적 강자만을 위한 것으로 거칠게 몰아가도 국민은 걱정만 하고 있고, 편승한 종편사업은 기세 등등히 '기울어진 축구장 역할'을 즐기고 이로 인해 편견과 부정적 이미지를 증폭하는 현실이다. 가히 무관의 제왕이다 할 수 있다. 또한, 정치불신의 이유 중 하나는 정당, 정파별 정책에 대한 말 바꾸기는 상호불신을 조장하고 국민에게 공익을 높이겠다는 관점에서 지지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정당의 역할이지만, 일부 지역, 계급, 계층을 위한 정치도 한 몫을 해왔다. 여기에다 정지지도자들의 좁은 포용력에서 찾을 수는 있겠다. 정치는 '항상 국민의 기대나 시대정신을 담는다.'고 외치지만 공허한 메아리쯤으로 여긴다. 우리 정치현실이 이렇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그 모양인데, 그렇다고 우여곡절 끝에 탄생된 새정치민주연합도 별만 다를 게 없는 형국이다.

정치란 한정된 자원과 권력을 어떻게 배분하느냐를 놓고 일어나는 세력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일일 것이다. 그 시대가 안고 있는 사회적 갈등은 말할 것이 없고, 당내 정풍과 개혁을 기치로 내걸 때에도 좀 더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수준 높은 정치일 것이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싸우는 행위는 불가피한 일일 것 같다. 만약 그런 일들이 없다면, 초정치, 반정치이며 정치가 제거된 시장전체주의 이거나 독재정치의 일면일 수도 있겠다. 물론 물리적인 폭력행사에 객관적인 사실을 왜곡하는 중상모략, 인권 침해적 언행은 금기할 사항이다.

정치적 싸움은 언와와 법을 통해, 그러나 대단히 치열하게 이루어져야할 일이지, 승냥이처럼 널려있는 폭로성 태도로 방송사 앞에 무슨 의기로 낮술을 퍼마시고, 당의 향방을 묻는 행사장을 고성을 치는 일같은 미개한 일, 국민을 모독하는 일 등은  당장 그만하라. 민심과 당심을 묻는 엄정한 장소에서 패거리와 시민의견을 담는다 치장하고 모바일을 빙자한 사기에 가까운 작태를 보였던것도 사실이라고 민주당 지난 대선보고서는 적시 되어있지 않던가?

지난 대선관련하여 선관위의 결과 발표를 앞두고도 일방을 예단하여 선언하거나, 여당 당직자에 대해 손지검, 고성, 비방, 강패 짓하는 것은 이 시대와 국민이 용납할 수 없는 구태정치 악습이다. 여야 모두 국민의 봉사자임을 알고 부끄러워할 줄 알라.

정치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권력주의적 정치지상주의에 대해서도 경계할 일이지만, 이제 2만 6천여불의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대한민국을 견인하고 입법하는 정치분야에서 참정치를 견인하고 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에 대한 집요한 부정과 만연된 혐오에서 자유로워져야하는 정치 지도자를 모시고 옹립해야 하지 않겠는가?

세월호의 참상을 보면서 정치분야를 되돌아 보게 된다.

민의를 토대로 하는 정치인가?

생산성있는 정치이기는 한 것인가?

민생과 일자리 창출을 우선시 하는 정치인가?

국가 대계의 디딤돌을 놓는 일에 국민들의 기대와 희망을 충족시킬 각오로 국회의원들에 국민이 안중에 있기는 한 것인가?

혼란과 갈등으로 범벅이 된 정치현실을 보면서 정상을 받아들일 때 정치가 살아나고 경제도 제자리를 잡을 것이다 확신한다.

 

후진된 정치작태가가 만연되고 있는 실정이라 민주진영 아무리 포장하고 리모델링한다한들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 그럴수록 정치권에 돌진할 기외한 기대와 국민적 바람이 응당 크고, 거칠게 엄습하여 올 것이고, 민심이라는 제3의 세력으로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보라! 

일관된 정치 소신과 지나온 행적의 수 많은 검증으로 준비된 정치지도자가 어디에 있는가?

지난 정권에 MB정권 보임장관들의 청문회에서 일반화 되던 그리도 흔한 병력 기피, 재산 축적, 사익추구도 추호도 없었던 분 아닌가?

어려울 적 당대표를 두 번씩 모셔놓고도 친노니, 철새니 운운하며 개거품 물던 매노들인데 때만 되면 한 치앞을 못 내다보는 한심한 정치사기꾼들이여!

 

정치는 유권자의 표를 통해 성장한다. 정치현실이 그렇다하더라도 유권자는 정당한 방법을 통해 제대로된 정치인을 뽑으면 될 일이다. 앞으로도 정치 불신 속에서도 경선과정에 정치신인과 후보자들이 어느 정도 확정될 것이고, 여전히 남는 일은 유권자의 몫과 권리행사다. 정치에 대한 불신을 이유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비리와 사익추구의 협소한 기성정치 유물에 대해서도 비난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정초부터 야당진영의 초미의 관심사였던 새정치와 민주당의 통합과정과 그 이후 행태를 보듯이 구호만 새정치이지 내용도 없이 국민을 빈번히 실망시켜 왔다. 새정치의 불가역적인 선택과 맥없는 야당, 두 어 박자 늦 대응하는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날선 시각도 여전하다.

 

합리적이고 당찬 민주당을 통해 어떻게든 야당을 제대로 살려 보겠다는 고뇌 속에 뼈 속까지 ‘함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는 헌신적인 지도자를 바로 보고 제대로 모시자!

 

새정치연합의 기형적 창당을 하고 여전히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다. 

어느 지역에서는 새정치 몫을 주창하고 옹호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다하니, 이 상황에 정치가 불신의 늪에 빠져 정치인을 지지하는 당원으로서도서 주제가 어설프고 얼굴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