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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5-24 12:34
게이오 대학 강연 - 한반도 문제와 일본의 역할 (2016. 5. 19)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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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519 게이오 대학 강연.pdf (106.7K) [1] DATE : 2016-05-24 12:34:07

게이오 대학 강연
2016. 5. 19

한반도 문제와 일본의 역할

손  학  규
(전 민주당 대표)


1. 인사말

요즘 저는 한반도의 남해안 끝, 전라남도 강진의 산중에 살고 있습니다. 등산과 산책을 하며 생각을 가다듬는 것을 일과를 삼은 지 2년이 다 되어 갑니다. 저에게 모처럼의 일본 나들이 기회를 주시고, 더욱이 명성 높은 게이오대학의 동아시아연구소에서 강연을 맡겨주신 오코노기 마사오 선생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강연에 많은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니시노 준야 소장께도 감사합니다.
 
강연에 앞서 구마모토 현 일대 지진으로 고통 받는 분들께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재해 복구에 노력중인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정부, 봉사기구, 시민사회단체의 많은 분들께도 격려와 성원을 보냅니다.

저는 일본에 여러 번 왔었습니다. 경기도 지사 시절에는 일본의 투자 유치를 위해 수도 없이 많이 방문했었고 2011년에는 민주당 대표로 쓰나미가 휩쓴 동북지방을 방문했었습니다. 그 당시 일본이 겪었던 참상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 엄청난 재앙을 묵묵히 견뎌내고 피해를 극복해온 일본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합니다.

산중에 사는 사람이 일본에 오고 싶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일본을 다녀간 이후로 한일 관계는 그리 원만하지 못했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서 역사문제, 영토 문제가 격화되어 정상간 대화의 채널도 끊겼고, 양국 관계는 무역, 투자, 금융, 인적 교류 모든 측면에서 급격하게 축소되었습니다.

국제 경제의 침체로 양국 경제는 어려움을 겪고 있고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양국의 긴장관계는 모두에게 안타까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작년 말 양국 정부 간 위안부 문제 타결을 위한 합의문이 발표되어 정부 간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야당과 야권의 반대로 아직 여진이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저는 1965년 대학에 입학하여 한일회담 반대운동으로 학생운동을 시작해서 그 이후로 민주화 운동으로 젊음을 보낸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정치에 입문하면서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되고, 한일관계의 원만한 진행이야말로 우리의 경제와 안보에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대두로 동북아시아의 질서가 새롭게 형성되고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긴장이 고조되면서 일본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일본을 더 잘 알고 싶어서,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까 해서 일본을 찾았습니다. 일본을 공부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이번에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신 이낙연 전라남도 지사님과 국사관 대학의 신경호 교수님께도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동행하신 이찬열 의원께도 감사합니다.


2. 한국정치의 위기

지난 4월13일 한국의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국회 재적 300석 중 122석을 얻어 과반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새누리당보다 한 석 많은 123석을 얻어 제1당이 되었습니다. 창당 직후 선거를 치른 국민의당은 38석으로 제3당의 위치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었습니다.

이번 선거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 실패와 이에 따른 민생문제와 청년실업문제 등으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한 것입니다. 여당의 파당 정치에 대한 심판도 있었습니다. 야당에 대한 실망도 컸습니다. 야당의 텃밭인 호남에서 제1야당은 거의 전멸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젊은 층의 참여가 높았습니다. 변화와 개혁을 갈망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의 정치 지형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여소야대 국면이 전개된 것입니다.

한국은 현재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한마디로 다중적이고 총체적인 위기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요동치는 동북아질서 재편 과정 속에서 어떻게 하면 한국이 생존과 번영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내지 못하는 가운데 기존의 산업 경쟁력도 약화되었습니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었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일자리 부족과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미래의 주역인 청년 세대가 희망을 갖지 못하고 연애, 결혼, 자녀를 포기하는 ‘3포세대’, 혹은 ‘N포세대’로 스스로 좌절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지역 간, 계층 간, 세대 간의 갈등이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고 사회적 격차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 못해 공동체 복원 및 사회 통합의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번 총선 결과는 이러한 총체적 위기상황의 반영이었습니다. 국민들은 분노와 좌절 속에 미래지향적인 정치의 새판을 짜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동북아 정세와 북핵 위기

한국이 대외적으로 당면한 최대의 위기요소는 북핵문제와 북한문제입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추구하는 가운데 4차 핵실험과 대륙간 미사일 로켓발사 실험을 강행하였습니다. 최근 북한 노동당은 36년 만에 당 대회를 열고 김정은에게 ‘당 위원장’이란 최고 직위를 부여하며 체제를 정비했습니다. 김정은은 핵무기의 소형화, 고도화, 질량적 발전을 꾀해 나가겠다고 발표함으로써 비핵화는커녕 앞으로도 핵 개발을 지속해나갈 것을 천명하였습니다.

지난 사반세기 남북한 관계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로 ‘도발과 위기’ → ‘협상’ → ‘대북 양보 및 일괄 타결’ → ‘파기’ → ‘재협상’의 악순환을 거듭해 왔습니다. 과거 북핵위기에서 한국과 관련 당사국들은 제재와 협상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해왔으나 결과적으로 북한에게 핵과 미사일 기술의 진전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번 북한의 핵위기를 계기로 한국은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UN은 포괄적 경제제재를 마련하는 등 주요국들은 고강도 제재를 추진하면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각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이 강력한 의지로 국제사회의 대응을 선도한다면 유엔 제재를 넘어서는 효과를 예상할 수 있으나 결국 중국의 협조가 결정적입니다. 북한경제가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자세가 관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만든 국제질서, 특히 동북아시아에 형성된 새로운 국제질서입니다. 21세기 동북아시아 국제질서는 급속히 재편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급격한 부상으로 형성된 G2질서 속에서 미국은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통해 동북아지역의 강국으로 존재하고 있고, 중국은 ‘신형대국관계’를 외치며 명실상부한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동북아 질서의 변동 속에서 한국은 심각한 전략적 딜레마를 안고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하고 지리적으로 중국에 가까울 뿐 아니라 미중 경쟁에 매우 민감한 위치에 있습니다.

한국은 북한의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위협과 지속적인 대남 도발에 직면하고 있으며 통일을 이룩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미중의 협력이 한국의 국가 목표 실현에 필수 불가결합니다. 특히 북한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와 한국 주도의 남북관계 개선, 나아가 통일을 완성하기 위해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야만 합니다. 바로 이것이 한국이 안고 있는 이중적인 고민입니다.
 

4. 북한문제와 미·중관계

중국의 지도부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 대단히 우려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4월 북한의 일련의 무력시위에 대해 “한반도에서 전쟁과 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하면서 국제사회에 대북 제재에 강한 지지의사를 재차 밝힌 바 있습니다. 중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을 강화시키고 나아가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을 형성시켜 자국에 군사적 위협을 가져다준다고 보고 있습니다. 주변 안정과 경제성장 지속, 그리고 책임있는 강대국으로서 외교적 위상을 확보하려는 중국에게 북한의 핵보유는 자국의 국익에 배치되는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 발언은 한국, 미국, 일본 등에 대해서도 한반도 긴장 상태를 높이는 행동은 원치 않는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시 주석의 경고는, 대북 경제제재에는 동참했지만 북한의 붕괴 등 혼란 상태가 오면 직접 개입할 수도 있음을 강하게 암시한 것입니다.

중국에게 북한은 골칫덩어리이지만 여전히 전략적 자산입니다. 미중 전략적 경쟁 구도에서 북한이 일종의 완충지대(buffer)로 존재하기 때문에 중국은 어떻게든 북한의 붕괴를 막으려 할 것입니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한편으로 제재를 추진하되 다른 한편으로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 논의하자는 병행트랙(parallel track) 접근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번 제재 국면에서 북한에 치명상을 주는 것은 피하되, 다른 한편으로 충분히 고통을 주어 비핵화와 평화협정 대화로 나올 수 있도록 수위를 조절하고자 할 것입니다.

미국은 과거 북한과 여러차례 타협을 해왔으나 그때마다 북한이 합의를 파기함으로써 북한정부에 대한 신뢰는 좀처럼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작년 연말 이래 미국은 중국이 제기한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 논의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최근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장이 북미평화협정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타진한 바도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이미 오랜 기간 제재로 상당한 곤란을 겪어 온 북한이 대비책을 마련해 놓은 데다 중국의 결정적 협력 없이는 북핵을 무력화시킬 수 없으리란 계산이 깔려있다고 하겠습니다.

미국이 대화국면을 조심스레 준비하고 있는 속에서 북한 역시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핵확산방지 의무를 이행”하고 “세계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평화공세로 나오고 있습니다. 남북간 군사회담도 제의하면서 대화를 탐색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국제적 긴장이 극도로 높아져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항상 대화의 문을 열고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5. 북한붕괴론

박근혜 정부 들어서서 대북정책은 북한의 ‘급변사태’ 또는 ‘북한붕괴론’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월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정권을 반드시 변화시키겠다”고 말했습니다. 정권변화(regime change)는 사실상 체제 붕괴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보면 급작스런 북한의 붕괴는 한국과 중국은 물론 일본에도 결코 바람직스런 상황이 아닙니다. 중동 국가의 내전으로 수십만 명의 난민이 그리스, 터키 등으로 탈출하자 독일 네델란드 등 모든 유럽국가에 비상이 걸려 있습니다. 북한체제가 급작스레 붕괴되어 100만 명의 난민이 바다로, 육지로 탈출한다면 인접국가인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는 큰 혼란에 놓입니다.

난민은 둘째 문제입니다. 북한정권이 이 상태에서 붕괴하면 과연 북한 주민의 경제를 누가 책임질지, 대단히 큰 문제입니다. 동서독이 통일될 당시 동독의 1인당 GDP는 서독의 38%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 후 독일의 경제가 대단히 휘청거렸는데 지금 북한 1인당 GDP가 남한의 5%밖에 안되는 상황에서 북한 경제를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또한 정치와 치안은 어떻습니까? 주변 강국들간의 정치적 관계는 어떻습니까? 자칫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한반도는 재앙의 진원지가 될 것이 너무 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붕괴론을 부정합니다.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불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최근 식량문제를 비롯해서 북한의 경제가 상당히 안정되었다는 판단이 지배적입니다. 오랜 제재로 내성이 축적된 데다, ‘장마당’으로 표현되는 시장경제의 폭도 많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최근 북한의 노동당 7차당대회를 취재한 서방의 언론들이 평양에 들어선 건물과 교통혼잡을 크게 보도한 것도 북한의 사회적 안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당 대회를 통해서 김정은의 리더십이 안정을 확립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했을 때 북한 붕괴론은 실현 가능성이 낮을 뿐 아니라 실현이 되어도 한국과 주변국들에게는 오직 재앙일 뿐입니다. 이런 면에서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제재와 압박이 김정은 체제의 핵무기 포기와 체재의 개혁개방을 가져오는데 효과적일까 하는 커다란 의문을 갖게 합니다.

핵무기/미사일 실험에 대한 단기 대응으로서 고강도 제재 압박조치는 당연히 필요하고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고 유엔과 국제사회 그리고 특히 중국의 대북 제재 참여도 매우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문제는 첫째, 대북 제재의 목표에 대한 정의 즉, 체제 붕괴인지, 레짐 체인지인지, 비핵화인지가 분명치 않고, 둘째, 제재를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지, 어떤 조건이 충족되면 제재를 완화할 것인지가 알기 어렵고, 셋째, 제재 이후 출구 전략이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아 매우 걱정이 되는 상황입니다.

북핵 문제, 북한 문제를 동시에 풀어 나가기 위해서는 제재-압박-봉쇄라는 채찍과 대화-협상-교류라는 당근을 시의 적절하게 활용하는 접근법, 즉, 대화와 압박의 병진 노선이 불가피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개성공단 폐쇄조치는 대북관계의 최소한의 레버리지를 상실하게 되는 것 같아 아쉽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대화의 창을 열어놓고 하트라인을 가동하는 것이 전쟁중인 적대국간에서도 있어야 하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6. 북한문제에 대한 전략포인트

그렇다면 한국은 북한의 급변사태나 북한붕괴론에 입각한 대북정책에만 전념하기 보다는 다가올 대화국면을 위한 본격적 준비에 나서야 합니다. 대화와 관여과정 전체에 대한 확실한 로드맵을 마련하고 여러 상황에 대처하는 계획이 필요하며 정부내 각 부처간 긴밀한 협력과 의견 조율이 필요합니다. 북한문제에는 4가지 전략적 포인트를 고려해야 합니다.

첫째, 한국은 북핵 위협에 대한 미국, 일본과의 삼각협력을 견고히 하는 한편, 중국의 지지를 얻는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그동안 한국의 역대정부는 북핵 해결을 위해 중국의 외교적 노력을 이끌어 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박근혜 정부도 중국과의 관계 심화를 위해 여러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작년 9월 여러 외교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전승절에 참석하여 북한문제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이끌어내고자 하였으나, 북한에 사활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중국과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웠습니다.

중국에 있어 한반도 문제는 ‘작지만 큰’ 사안입니다. 중국은 현재 대북 경제재재 국면으로부터의 출구 전략을 모색하고 있을 것입니다. 한반도 불안정 요소를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비핵화,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문제에 적극 개입하고 나설 가능성도 있습니다.

중국과의 협의에서 중요한 점은 중국이 북핵문제를 미중 전략적 경쟁과 연결시켜 인식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다. 강력한 대북 제재가 북한의 붕괴를 가져와 한반도 전체를 미국의 영향권으로 편입시키는 수단으로 인식된다면 중국은 대북 제재 참여에 소극적으로 전환할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은 북핵정책의 목표가 북한의 비핵화이지 북한정권의 붕괴가 아님을 명확히 하고, 한국이 북한과의 평화 공존과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통일을 추구한다는 시그널을 분명히 전달해야 합니다.

둘째,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새로운 구상이 필요합니다. 북한 핵에 대해 그간 여러 차례 합의와 불이행을 반복해왔던 이유는 핵 없이는 정권과 체제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북한의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한 데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구상은 핵 프로그램 중단과 폐기, 체제의 생존 보장, 경제 지원 패키지를 서로 연계하여 북한이 비핵화 과정이 진행되면 정권과 체제도 안정되고 경제발전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 국민의 지지기반도 강화될 것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구상에서는 북한과 중국이 제기하는 북미 평화협정 보다 훨씬 실효성이 높고 신뢰성이 있는 평화체제를 제시해야 합니다. 북미 평화협정은 한국을 배제한 협상인 데다가 미군철수와 동맹 폐기 같은 비현실적 요소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를 대체하는 평화체제 구상은 진정성있는 북한의 비핵화 뿐 아니라, 북한 체제 보장, 또는 정권 안보 보장을 확인하고, 군사적 신뢰구축, 군비통제 까지를 포괄하는 것일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북한의 자생적 번영노선을 촉진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인도적 지원과 낮은 수준의 경제협력을 거쳐 궁극적으로 북한경제의 시장화와 그 이행을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 5.24조치 해제를 비롯한 경제협력 방안은 지금과 같은 위기국면에서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할 우리의 과제입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은 북한의 장기적 생존과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는 명확한 시그널을 보냄으로써 북한의 개방에 따른 북한의 두려움을 완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의 장기적 생존과 발전을 전제한 구체적인 대북 지원의 프로그램을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철도, 도로, 전력 분야 등의 인프라 구축, 농업 등의 기초분야에 대한 지원을 정교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을 대하는 우리 한국인의 마음가짐은 ‘동포’와 ‘민족’이어야 합니다. 저는 경지도지사 시절 남북농업협력사업의 일환으로 전문가들과 함께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벼 재배기술이 뒤떨어진 북한에 기술을 지원하자 쌀 수확량이 두 배로 늘었습니다. 북한의 농업 관계자들과 농민은 우리 측에 기술을 대량 보급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우리는 마음껏 도왔고, 그들은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평양 남쪽의 농촌 마을이었는데, 남측 고위 인사 가운데 농민의 가구를 직접 찾아본 사람은 손 선생 한 사람뿐이라며 반기던 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넷째, 한국은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통해 이상과 같은 새로운 구상을 제시하여 그들의 전략 변화를 촉구하고 이를 기초로 미국과 일본, 주변국이 북한의 정권 보장, 경제발전 지원, 북한과의 정치적 관계 수립 등으로 대응해 가는 길을 제시하고 새롭게 행동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평화체제의 확립은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의 자세입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북미관계 정상화, 즉 북미수교는 이 프로세스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북한은 2차 대전 후 미국과 한 번도 국교관계를 맺은 일이 없는 유일한 국가입니다.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는데도 미국은 북한과 국교수립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합리한 상황을 끝내는 것이야말로 북핵문제 해결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이기도 합니다.

미국이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서기 위해서는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합니다. 한국 정부가 나서지 않는데 미국이 급할 이유가 없고 한국 정부가 북한의 급변사태를 기대하고 있는데 미국이 여기에 찬물을 끼얹을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7. 일본의 역할

한국과 일본의 우호 협력관계는 동북아 질서에 있어서 핵심 요소입니다. 양국은 자유민주체제와 문화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 지경학적 관점에서 볼 때 한반도 문제는 일본에게 핵심적인 관심사였습니다. 명치이후 한반도는 일본의 안전보장에 치명적인 요소로 인식되었습니다. 현재에도 일본은 한국과 더불어 북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에 대한 최대 이해 당사국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한반도 문제 해결에 일본이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이 주도하는 한반도 통일이 일본에게 위협이라기보다는 이익이 될 것입니다. 한반도 통일이 1) 한국이 주도하고 2) 평화적 프로세스를 통하여 3) 비핵화 통일로 이루어지고 4) 시장 민주주의 체체가 보장되는 형태로 진행된다면 일본은 이에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통일한국의 도래는 안보불안 요소의 감소, 시장민주주의 확대로 이어져 일본에게는 외교안보, 정치경제, 사회문화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기회와 이익의 확대로 인식될 것입니다.

북한문제 및 한반도 통일 및 동북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일본이 지닌 역할은 대단히 큽니다. 일본이 전향적으로 국제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적극 환영하지만,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는 나머지 북한때리기와 북한 붕괴를 지지하는 인상을 주어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일본은 북한의 비핵화를 통한 북한과의 평화공존, 대화와 교류 확대 노선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이를 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과 북한의 수교 문제는 계속 미뤄둘 사안이 아닙니다. 일본과 북한의 수교는 일본의 전후 청산 종결을 뜻합니다. 북한은 일본과 수교하면 경제 발전의 전기를 맞을 수 있고, ‘협박의 외교’ 대신 대화 체제로 바뀔 수 있습니다. 대북 봉쇄와 경제제재는 일본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표가 아닙니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는 큰 틀에서 수교교섭과 병행하면 풀 수 있다고 봅니다. 또 일본과 북한의 경제협력을 남북한 경제협력과 동조시킨다면 한반도 평화와 번영, 나아가 평화통일에 커다란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일본은 제2차세계대전후 영국 프랑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연합(EU)의 탄생 과정에서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럽 국가 사이의 오랜 반목과 갈등은 이제 공동운명체를 만들어냄으로써 화해와 협력으로 바뀌었습니다.

일본이 중국, 한국과 함께 동북아 공동체, 나아가 동아시아공동체를 추진하는 역사적 역할에 주도적으로 나서줄 것을 바랍니다. ASEAN+3(한중일)회의체는 동아시아 협력과 공존에 관한 논의를 한 발 더 진전시킬 수 있는 무대입니다. 이런 국제무대에서 일본이 앞장서서 동아시아공동체의 분위기를 조성해주기를 저는 희망합니다.      


8. 한일관계

한일관계는 1965년 국교가 정상화 된 이래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지난 50년간 한일관계는 정치, 외교안보, 경제, 사회문화의 모든 측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돌이켜보면 한일관계는 제국과 피식민 관계라는 비대칭적, 수직적 관계에서 출발하여 불과 50년 만에 대칭적이고 수평적인 관계로 진화한 세계사에서도 드물게 보는 성공적인 양자관계입니다.

그러나 최근 한일관계 악화 현상은 심히 우려되는 수준까지 진행되고 있어 한일 양국 공히 동북아지역에서 전략적 기회와 공간은 위축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최근 일본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 조사는 60%대에서 30%대로 저하되었습니다. 2012년 이후 한일 간 역사/영토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점차 외교, 안전보장, 경제, 문화 영역으로 확산 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 관계개선을 이루지 못한다면 통일을 위한 한일협력의 기반은 점차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한일관계의 개선을 위한 양국의 노력은 배가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한일관계는 미중 양강구도로 재편되는 동아시아 국제체제 속에서 양국이 기본적 가치와 규범의 공유를 기반으로 전 분야에 걸쳐 전면적인 협력의 추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일 협력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양국은 역사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하여 미래지향적인 자세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미래의 한일관계는 정치, 안보, 경제 이슈 중심의 과거지향적이고 대립적인 패러다임을 넘어서 인구, 문화, 교육, 환경, 재난, 정보지식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한일협력의 주체는 국가 뿐 아니라 시민사회, 지식계, 지방자치제 등의 전방위로 확산시켜나가는 것이 한일, 동북아시아, 그리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자리를 통해서 한일청년들의 중요성과 역할에 대해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새로운 한일관계의 중심가치는 한일 청년들의 상호 진정성 있는 이해와 협력만이 한국과 일본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는 신념에 있습니다. 한일의 미래 발전을 위해서는 일본 청년들 역시 한반도 통일의 진정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즉,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일본 사회 및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훨씬 많다는 신념과 행동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미래는 한일청년의 미래이며 그 미래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를 위해서 우선 한일청년교류재단을 동시에 설립하여 매년 1만명 이상씩 상호 교류하고 서로의 언어와 역사와 문화와 사회 등을 이해하는 중장기 프로그램들을 진행시켜야 한다고 제의합니다.


9. 마치며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아사히신문 전 주필께서 지난달 28일 베이징에서 세상을 떠난 소식에 무척 놀랐습니다. 이번에 도쿄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터라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공동개최의 흐름을 만들 때 고인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현직 총리가 공인 자격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것이 지닌 문제점도 조목조목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와카미야 주필이 한일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적은 우리 모두의 존경을 받습니다. 고인 뿐 만 아니라 역사를 통찰하는 많은 일본 지식인들이 그간 일본 사회를 건강하게 지켜왔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을 비롯해서 많은 지식인과 일본 시민들이 와카미야 주필같이 일본과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일본 정부와 집권 자민당의 바람대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 원폭희생자 위령탑을 방문합니다. 일본의 전반적 여론은 이 방문을 사죄와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원폭투하는 비극이지만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남긴 유산의 전부는 아닙니다. 역사를 일방적으로 해석하면 과거사 문제는 동북아 평화질서 구축이라는 미래에 장애가 됩니다. 불행했던 과거사를 극복하고 한국과 중국이 진정으로 일본과 손잡고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만들려면 적어도 일본이 총론에 대한 인식만큼은 같이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의 우호 협력관계는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어제의 역사는 오늘을 거쳐 내일로 이어집니다. 역사의 준엄한 교훈은, 결코 우리가 생각하기 싫다고 해서 슬쩍 피하고 지나가도록 허용하지 않습니다.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철거한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역사적 진실을 후대에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태평양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양국은 신뢰 회복을 위해 오랜 기간 동일한 문화와 가치를 공유해온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달 23일 사이타마현 히타카시에서 조촐한 기념비 제막식이 열렸습니다. 고구려 유민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고마(高麗)군의 창설 1300년을 기념하는 자리였습니다. 창설자는 고구려(高句麗)의 마지막 왕 보장왕(寶藏王)의 아들 약광(若光)이었습니다. 그의 60대 후손인 고마후미야스(高麗文康) 宮司는 그런 역사를 보존해왔습니다. 이 자리에는 다카마도노미야 비(高円宮 妃)와 유흥수 주일 한국대사도 참석했습니다. 한일간의 역사를 돌아보며 미래를 설계할 좋은 자리였습니다.

G2 시대를 맞아 한국 일본은 더욱 긴밀한 협력과 공조가 필요합니다. 양국의 지식인과 정치지도자는 한 때의 권력과 명예를 탐내 역사를 거역하면 안됩니다. 오랜 한일 교류의 역사를 기억하면서, 불행했던 한 시기를 슬기롭게 정리하고, 진정한 ‘공영’을 위해 함께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 나갑시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