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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5-04 16:14
행복의 경제학/ 제프리삭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17  

행복의 경제학



제프리 삭스

(콜럼비아대 교수, UN 사무총장 특별보좌관)


우리는 극도로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 전체의 전례 없는 수준의 부(富)에도 불구하고, 불안, 걱정, 불만이 만연해 있다. 미국인들의 절대 다수는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 비관론이 치솟았다. 세계의 다른 곳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배경을 뒤로, 이제 경제적 삶에 있어 행복의 기본적 원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시간이 되었다. 더 많은 소득을 향한 끝없는 추구는 행복과 삶의 만족의 증대가 아니라 유례없는 불평등과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제적 진보는 중요하며 삶의 질을 개선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경제적 진보가 다른 목표들과 조화롭게 추구될 때만 그렇다.


히말라야의 부탄 왕국은 바로 이 점에서 그 길을 이끌어 왔다. 40년 전, 왕좌에 막 오른 어린 부탄의 4대 왕은 주목할 만한 선택을 했다. 그것은 부탄은 국민총생산(GNP)이 아니라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부탄은 경제성장 뿐 아니라 문화, 정신적 건강, 동정 그리고 공동체를 강조하는 대안적, 총체적 접근을 실험하고 있다.


최근 수십 명의 전문가들이 그 나라의 실적을 면밀히 평가하기 위해 수도 팀푸(Thimphu)에 모였다. 나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지도자이며 국민총행복 관념의 열렬한 옹호자인 부탄의 총리 지그미 틴리(Jigme Thinley)와 함께 그 모임을 공동으로 주최했다. 우리 모임은 어떻게 정부 정책이 그들 사회의 행복을 촉진할 수 있는지를 각국에 검토할 것을 요청한 지난 7월의 UN총회 선언의 소산이었다.

팀푸에 모인 모든 이들은 국민소득이 아닌 행복 추구의 중요성에 동의했다. 그래서 우리의 질문은 급격한 도시화, 매스미디어, 글로벌 자본주의 그리고 환경 위기로 요약되는 세계에서 어떻게 행복을 달성할 수 있느냐에 맞춰졌다. 어떻게 우리의 경제적 삶이 공동체 의식, 신뢰, 그리고 지속가능한 환경을 다시 만들 수 있도록 재구축될 수 있을까?


처음 의견이 모아진 결론 중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첫째, 경제적 번영의 가치를 폄훼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깨끗한 물, 의료보호, 교육 등 기본적 필요와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어서 굶주리고 있다면, 그들은 고통 받을 것이다. 빈곤을 완화시키는 경제발전은 행복 증진에 있어 불가결한 단계인 것이다.


둘째, 다른 목표들을 도외시한 채 GNP만의 끝없는 추구도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미국을 보면, 지난 30년 동안 GNP는 가파르게 증가했지만, 행복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외곬으로 GNP의 추구는 광범한 저변계층의 확대와 빈곤의 덫에 갇힌 수백만의 아이들의 증가를 부채질 했고, 부와 권력의 거대한 불평등 그리고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야기했다.


셋째, 행복은 개인과 사회에 모두에 있어, 삶에 대한 균형 잡힌 접근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 개인으로서 기본적 물적 필요를 갖지 못할 때 우리는 불행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더 높은 소득 추구가 가족, 친구, 공동체, 동정, 내적평정의 유지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앗아간다면, 우리는 역시 불행할 것이다. 한 사회로서도 생활수준의 향상을 지속시키는 경제정책들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다른 모든 사회적 가치들을 이윤추구 하나에 종속시키는 것은 꽤 다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는 점점 더 기업이윤이 공정함, 정의, 신뢰, 육체적‧정신적 건강, 지속가능한 환경과 같은 모든 다른 소망을 집어삼키는 것을 허용해왔다. 미국 대법원의 방조로 기업들의 정치자금 기부는 점점 더 민주적 정치과정을 해치고 있다.


넷째, 글로벌 자본주의는 행복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여타의 환경오염을 통해서 자연환경은 계속해서 파괴되고 있다. 그러나 쉴 새 없이 퍼부어대는 석유산업의 광고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또 그것은 사회적 신뢰와 정신적 평정을 갉아먹고 있다. 현저히 늘어난 병리적 우울증이 사회 도처를 채워간다. 매스 미디어는 터무니없이 반-과학적인 기업의 ‘메시징’의 분출구가 돼버렸다. 미국인들은 광범위한 형태의 소비자 중독의 심화로 고통 받고 있다.

패스트푸드 산업이 비만을 불러오는 음식들에 대한 해로운 의존을 만들기 위해, 오일, 지방, 설탕 그리고 다른 중독성 재료들을 사용하는 행태를 한번 생각해보라. 미국인들의 3분의 1이 비만이다. 만약 각국 정부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건강에 좋지 않는 중독성 있는 식품광고”처럼 위험한 기업관행을 엄격히 제한하지 않는다면, 세계의 나머지 지역들 역시 종국에는 미국처럼 될 것이다. 문제는 식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광고 역시 다양한 소비자 중독을 만들고 있다. 이는 공공의료 비용의 대폭적인 증가를 의미한다. 과도한 TV시청, 게임, 약물사용, 흡연, 음주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다섯째, 행복 증진을 위해서 우리는 한 사회의 웰빙(well-being)의 증가 또는 하락을 가져오는 여러 요인들을 찾아내야 한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GNP 측정에 많은 돈을 쓰지만, 나쁜 공공보건 상태의 원인(패스트푸드나 TV시청), 사회적 신뢰 하락 그리고 환경 악화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는 돈을 쓰고 있지 않다. 이런 요인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우리는 실행에 나설 수 없다.

기업이윤의 광적인 추구는 우리 모두를 위협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경제성장과 발전을 지지한다. 그러난 그것이 보다 넓은 맥락에 기초해 있을 때만 그러하다. 이를테면 지속가능한 환경이나 사회적 신뢰 형성에 요구되는 동정과 정직의 가치의 촉진과 조화를 이룰 때 말이다. 행복을 향한 탐색이 산악지대 아름다운 부탄 왕국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출처>

Project Syndicate 2011년 8월 29일

http://www.project-syndicate.org/commentary/sachs181/English